미백 크림 성분표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이름이 하나 있어요. 하이드로퀴논.
지난번 아르부틴 글에서는 이 이름이 조연이었어요. 아르부틴이 하이드로퀴논으로 바뀐다는 주장을 따라가는 데 집중했고, 하이드로퀴논 자체는 따로 다루지 않았습니다.
이번에 정면으로 다루는 이유가 있어요. 하이드로퀴논은 같은 성분이 나라마다, 제품 분류마다 서로 다른 서랍에 들어가 있는 대표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EU에서는 화장품에 넣을 수 없는 원료예요. 미국에서는 2020년에 일반의약품 매대에서 내려가야 했고, FDA가 쓰지 말라고 경고까지 했어요. 그런데 한국 약국에서는 일반의약품으로 팔리고, 올해만 새 허가가 16건 났습니다. 🔍
이 글은 세 나라의 규정 원문과 식약처 의약품 허가 정보를 대조해서, 그 서랍이 어떻게 나뉘는지 확인한 기록이에요.
화장품으로는 한국·EU 모두 금지예요. 한국은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별표1 「사용할 수 없는 원료」에 히드로퀴논이 있고, EU는 화장품 규정 Annex II에 올려 두고 인조손톱용 0.02%(전문가용)만 예외로 둡니다.
미국은 2020년 9월 23일부터 FDA 승인 없는 OTC 미백제를 시장에서 빼도록 했어요. 2022년에는 계속 판 12개 회사에 경고장을 보내고, 발진·얼굴 부종·오크로노시스 같은 심각한 부작용 신고를 근거로 소비자에게 쓰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남은 FDA 승인 의약품은 처방약 Tri-Luma 하나예요.
한국에서 하이드로퀴논 크림은 의약품이에요. 의약품안전나라에서 히드로퀴논 주성분 품목이 32개 검색되고, 단일 성분 크림은 모두 일반의약품이에요. 성분 이름보다 어떤 허가를 받은 제품이냐가 서랍을 가릅니다.
☐ 한국 화장품 → 별표1 사용 금지 원료(고시 제2026-19호 기준)
☐ EU 화장품 → Annex II 금지, 인조손톱 시스템 0.02%·전문가용만 예외
☐ 미국 OTC → 2020-09-23부터 승인 없는 미백제 시장 제거 의무, FDA는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
☐ 한국 의약품 → 일반의약품 크림, 장기간 사용 금지가 허가사항에 적혀 있음
바쁘면 여기까지만 봐도 돼요. 아래는 원문을 하나씩 열어 확인한 내용입니다. 👇
1. 성분 이름은 서랍 이름이 아니다
“하이드로퀴논은 금지 성분인가요?”라는 질문은 생각보다 답하기 어려워요. 어느 나라의, 어떤 제품 분류에서냐에 따라 답이 갈리기 때문입니다.
같은 성분이 화장품이라는 서랍에 들어가면 화장품 규정을 따르고, 의약품이라는 서랍에 들어가면 의약품 허가를 따라요. 하이드로퀴논은 그 차이가 가장 크게 드러나는 성분입니다. 한국 화장품 서랍부터 열어볼게요.
식약처 「화장품 안전기준 등에 관한 규정」 (고시 제2026-19호, 2026. 3. 18. 일부개정·시행) — 별표1 「사용할 수 없는 원료」
· 히드로퀴논 (CAS 123-31-9)
· 같은 별표에 히드로퀴논 모노메칠에텔(4-메톡시페놀), 모노벤질에텔(4-벤질옥시페놀), 모노에칠에텔(4-에톡시페놀)도 올라 있음
별표2 「사용상의 제한이 필요한 원료」에는 히드로퀴논이 없어요. EU처럼 ‘이 용도에 이 농도까지’라는 예외가 한국 화장품 규정에는 없다는 뜻입니다.
한국 화장품은 2012년 화장품법 개편 이후 ‘쓰면 안 되는 원료’를 목록으로 정하는 방식이에요. 하이드로퀴논은 그 목록에 이름이 박혀 있습니다. 해외 직구로 들어온 ‘하이드로퀴논 함유’ 화장품은 한국 기준으로는 화장품이 될 수 없는 제품이에요.
2. EU — 금지, 예외는 인조손톱 하나
EU 화장품 규정 Regulation (EC) No 1223/2009 (2025. 9. 1. 통합본)
· Annex II(금지물질) 1339번 — 1,4-Dihydroxybenzene(Hydroquinone), “with the exception of entry 14 in Annex III”
· Annex III(제한물질) 14번 — 하이드로퀴논, 인조손톱 시스템(Artificial nail systems), 최대 0.02%(혼합 후), 전문가용만. 라벨 문구: ‘For professional use only — Avoid skin contact — Read directions for use carefully’
같은 Annex III는 아르부틴(얼굴 크림 7%)·알파-아르부틴(얼굴 크림 2%, 바디로션 0.5%) 항목에 ‘하이드로퀴논은 피할 수 없는 미량 수준을 넘으면 안 된다’는 조건도 달아 뒀어요.
EU의 예외는 피부에 바르는 미백 용도가 아니라 인조손톱 재료예요. 그것도 전문가만 쓰고 피부에 닿지 않게 하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피부 미백 화장품으로 쓰는 길은 EU에도 없어요.
3. 미국 — 1982년 ‘유일한 성분’에서 2006년 ‘안전성 재검토’까지
미국은 화장품이 아니라 일반의약품(OTC) 서랍에서 하이드로퀴논을 다뤄 왔어요. 그리고 출발점은 지금과 정반대였습니다.
FDA, Rulemaking History for OTC Skin Bleaching Drug Products · 2006년 제안규칙(71 FR 51146)
· 1982. 9. 3. 잠정 최종 모노그래프(47 FR 39108) — 하이드로퀴논을 OTC 피부미백제의 유일한 GRASE(일반적으로 안전·유효하다고 인정되는) 활성성분으로 분류
· 2006. 8. 29. 제안규칙 — OTC 피부미백제를 GRASE가 아니고 부정표시된 제품으로 보자고 제안하고 1982년 모노그래프를 철회
· 2006년 제안의 이유 — 미국 국가독성프로그램(NTP)의 경구 투여 시험에서 수컷·암컷 쥐와 암컷 생쥐에 발암성의 ‘some evidence’가 나왔고, FDA는 “바르는 하이드로퀴논의 사람 발암 위험을 배제할 수 없다”고 적었어요. 또 1~2% 농도에서도 외모를 손상시키는 오크로노시스가 보고됐다고 밝혔습니다.
발암성 근거는 동물에게 먹인 시험이에요. 사람이 바른 결과가 아니고, FDA도 ‘배제할 수 없다’고 썼지 ‘발암 물질로 확인됐다’고 쓰지 않았습니다.
2006년 문서는 ‘제안’이었어요. 최종 규칙으로 확정되지 않은 채 14년이 흘렀고, 그 매듭을 지은 건 2020년의 법률이었습니다.
4. 2020년 기준일, 2022년 경고 — FDA가 실제로 쓴 문장
코로나19 대응 법안이었던 CARES Act 안에 일반의약품 제도를 고치는 내용이 함께 들어 있었어요. 오래 미결이던 OTC 성분들의 법적 지위를 이 법이 한꺼번에 정리했습니다.
FDA, FDA works to protect consumers from potentially harmful OTC skin lightening products (Drug Safety Communication, 본문 날짜 2022. 4. 19. / 페이지 갱신 2026. 5. 1. / 2026. 10. 6. 열람)
· 법적 지위 — “OTC skin lightening products containing hydroquinone are deemed to be new drugs and are misbranded.” 팔려면 FDA 승인 신약허가(NDA)가 필요
· 기준일 — “effective September 23, 2020, manufacturers and distributors of OTC skin lightening products that do not have FDA approval must remove the products from the marketplace.”
· 2022. 4. 19. 조치 — 하이드로퀴논 OTC 미백제를 계속 판 12개 회사에 경고장. 이 제품들은 미승인 의약품이며 GRASE가 아니라고 명시. 일부 제조사는 수입경보(import alert)에 올림
· 안전성 — 피부 발진, 얼굴 부종, 오크로노시스(피부 변색) 등 심각한 부작용 신고를 받았고, “FDA advises consumers not to use these products due to the potential harm they may cause, including ochronosis which may be permanent.”
· 남은 길 — “Tri-Luma is the only FDA-approved drug containing hydroquinone.” Tri-Luma는 처방약으로, 중등도~중증 얼굴 기미의 단기 치료에 승인됐고 의료전문가 감독 아래에서만 써야 함
· 화장품에도 — OTC 미백제에 대한 FDA의 안전성 우려 상당수가 화장품 속 하이드로퀴논에도 해당한다고 적음
미국 사례를 “서류(승인)가 없어서 못 파는 것일 뿐”이라고 읽으면 절반만 읽은 거예요. FDA는 같은 페이지에서 심각한 부작용 신고를 밝히고, 오크로노시스가 영구적일 수 있다며 소비자에게 쓰지 말라고 권고했습니다. FDA가 이런 제품은 ‘GRASE가 아니다’라고 판단한 배경에도 2006년의 발암성·오크로노시스 검토가 있었어요.
반대로 “미국이 하이드로퀴논을 통째로 금지했다”도 정확하지 않아요. FDA가 승인한 처방약 Tri-Luma는 남아 있습니다. 사라져야 했던 건 승인 없이 누구나 사던 OTC 제품이고, 남은 건 의사가 짧게 쓰도록 처방하는 약이에요.
5. 기준일 뒤에도 매대에 남은 제품
법적 기준일이 곧 매대에서 사라진 날은 아니었어요. FDA의 2022년 경고장이 그 증거이고, 지역 상점을 직접 돌아본 연구도 있습니다.
Arora P, Brumley C, Hylwa S. Prescription Ingredients in Skin-Lightening Products Found Over-the-Counter Post-Hydroquinone Ban: Cross-Sectional Study of 70 Stores in the Twin Cities. J Cosmet Dermatol 2025;24(3):e70005
· 대상 —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세인트폴 일대에서 인터넷으로 ‘ethnic stores’·‘imported skincare’를 검색해 찾은 수입품 전문 상점 70곳(OTC 판매 금지 약 3년 뒤 방문)
· 미백 제품을 판 상점: 70곳 중 32곳(45.7%)
· 하이드로퀴논 함유 제품이 있던 상점: 미백 제품 판매 상점 32곳 중 7곳(21.9%) — 전체 70곳 기준으로는 7곳(10.0%)
· 처방 강도 국소 스테로이드 함유 제품이 있던 상점: 32곳 중 11곳(34.4%)
숫자는 모두 상점 수예요. 연구진이 직접 보거나 직원에게 요청해 확인한 제품만 셌고, 제품 속 실제 함량을 잰 연구가 아닙니다. 수입품 상점만 골라 조사했으니 미국 전체 상점의 비율로 읽으면 안 되고, 저자들도 다른 지역을 대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적었어요.
소비자 쪽 관심도 움직였어요. 같은 시기 미국 구글 트렌드를 분석한 짧은 논문(Parikh & Ogunleye, J Cosmet Dermatol 2024)은 하이드로퀴논·나이아신아마이드·코지산 검색이 2020년 3~4월에 크게 늘었고, OTC 퇴출 이후 대체 미백 성분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고 해석했습니다. 다만 저자들도 이 성분들이 미백 말고 다른 용도로도 검색된다는 한계를 적었어요. 검색은 관심이지 사용량이나 효과가 아닙니다.
6. 한국 — 약국 서랍에 든 하이드로퀴논 32품목
이제 한국으로 와볼게요. 화장품 서랍에서는 금지였던 성분이, 의약품 서랍에서는 꽤 붐빕니다.
식약처 의약품안전나라 의약품 검색 — 주성분 ‘히드로퀴논’ (2026. 10. 6. 검색)
· 검색된 품목 32개 (정상 31, 유효기간만료 1)
· 히드로퀴논 단일 성분 크림은 모두 일반의약품
· 전문의약품은 트레티노인·스테로이드(플루오시놀론아세토니드 또는 히드로코르티손)와 섞은 3성분 복합 크림 3개와 원료 1개
· 허가일이 2026년인 품목이 16개, 2025년이 2개
허가 품목 수는 시장 규모가 아니에요. 허가만 받고 아직 팔지 않는 품목도 있을 수 있어요. 몇 %부터 전문의약품으로 나누는지 같은 법적 기준은 이번에 원문으로 확인하지 못했고, 위 분류는 검색된 품목의 현황입니다.
가장 오래된 대표 품목의 허가사항을 열어보면, 이 서랍이 어떤 조건으로 열려 있는지가 보여요.
의약품안전나라 — 도미나크림(히드로퀴논) (태극제약, 일반의약품, 허가일 1991. 6. 14.)
· 성분 — 1g 중 히드로퀴논 40mg(4%)
· 효능 — 간반, 흑피증(기미), 주근깨, 노인성 검은반점 등 과도한 색소 침착 피부의 점차적인 표백
· 용법 — 히드로퀴논으로서 2%, 4%로 1일 1~2회(아침, 취침 전) 환부에
· 경고 — ① 햇빛 노출 차단이 “무엇보다 중요” ② 동물실험(고용량 경구투여)에서 변이원성·발암성이 관찰돼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다
· 투여 금지 — 임부, 12세 이하 소아, 신장애 환자 등
· 일반적 주의 — 사용 전 24시간 피부 테스트, 2개월 정도 써도 개선이 없으면 사용 중지
· 기타 — 5% 히드로퀴논 크림을 8년 정도 만성적으로 쓴 경우 조직흑변증(오크로노시스)·콜로이드성 비립종 보고
· 생산실적(단위 천원) — 2020년 7,806,750 → 2025년 14,505,490 (약 78억 원 → 약 145억 원)
생산실적은 생산액이지 매출이 아니고, 수출명 제품까지 한 품목으로 묶인 값이에요. 약업지 데일리팜은 2022년 2월 기사에서 이 시장을 ‘정체’로 보고 도미나크림 점유율을 약 90%로 전했는데, 2026년 허가 현황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습니다.
미국 FDA가 OTC 제품에서 문제 삼은 바로 그 지점들, 발암성 동물 자료와 오크로노시스가 한국 일반의약품 허가사항에도 경고로 적혀 있어요. 한국은 이 위험을 ‘판매 금지’가 아니라 ‘의약품으로 허가하고, 기간·대상·햇빛을 조건으로 거는’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셈입니다.
화장품 쪽에는 하이드로퀴논이 ‘시험 항목’으로 한 번 더 등장해요. 아르부틴 글과 이어지는 부분이라 짧게만 짚을게요.
식약처 고시 제2009-165호 (2009. 11. 5.) — 기능성화장품 기준 및 시험방법 개정
알부틴 로션·액·크림·마스크시트 제형 등 미백 항목이 추가됐고, 알부틴·아데노신 복합 제형에는 ‘히드로퀴논 시험항목’이 들어갔어요.
2009년 고시 기준이에요. EU도 아르부틴 항목에 하이드로퀴논을 ‘피할 수 없는 미량’ 이하로 두라는 조건을 달았다는 점(근거 2)과 같은 방향입니다.
7. 그래서, 하이드로퀴논 제품을 어떻게 읽으면 되나
세 나라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정리돼요.
- 화장품으로는 한국·EU 모두 금지예요. EU의 예외는 인조손톱 재료(0.02%, 전문가용)뿐입니다.
- 미국 OTC로는 2020년 9월 23일부터 팔 수 없고, FDA는 안전성을 이유로 쓰지 말라고 권고했어요. 승인 처방약 Tri-Luma만 남았습니다.
- 한국 의약품으로는 일반의약품 크림이 허가돼 있지만, 장기간 사용 금지·햇빛 차단·사용 금지 대상이 허가사항에 붙어 있어요.
그러니 ‘하이드로퀴논 함유’를 내세우는 제품을 보면, 성분보다 먼저 이 제품이 어느 서랍에 들어 있는지를 확인하세요. 포장에 적힌 문구가 아니라 의약품안전나라에서 품목명을 검색해 허가 여부와 일반/전문 구분을 보는 게 확실합니다. 검색되지 않는 해외 직구 크림이라면, 한국 기준으로는 화장품도 허가 의약품도 아닌 제품이에요.
그리고 약국에서 산 허가 의약품이라도 ‘오래 바르는 미백 크림’이 아니에요. 허가사항이 정한 대로 짧게, 햇빛을 막으면서 쓰고, 2개월쯤 써도 나아지지 않으면 멈추는 약입니다. 기미가 오래 가면 약사나 피부과 의사와 먼저 상의하세요.
이 글은 evidglow의 자체 조사·집계로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하이드로퀴논 미백크림, 한국·EU 화장품엔 금지 · 미국은 OTC 퇴출과 안전성 경고 — 그런데 한국 약국엔 일반의약품 32품목 — evidglow
